수십 년 전 자리를 잡아 터전을 일구었다. 주변 건물과 도로 등 많은 것이 바뀌어도 계속해서 찾는 이가 있어, 살기에 좋아서 등 저마다의 사연으로 묵묵히 한자리를 지키고 보니 켜켜이 세월이 쌓였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지점이 되었다.
글. 김민선 사진. 엄태헌용산구에는 ‘오래가게’로 지정된 7곳이 있다. 오래가게란 서울시에서 2017년부터 선정해 온, 서울시에서 3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가게들을 뜻한다. 서울만의 문화적 가치를 지닌 곳을 발굴하는 데 가게 설립 연도, 전통과 역사성, 지속가능성, 지역 사회 의견이 모두 반영된 음식점, 생활 문화, 전통공예소 등을 선정한다. 130여 곳이 선정되온 가운데 용산구에서는 7곳이 선정됐다. 개미슈퍼, 기찻길 옆 용산방앗간, 김용안 과자점, 대성표구사, 이태원북스, 한신옹기, 합덕수퍼가 그 주인공이다. 그중 지난해 폐업한 기찻길 옆 용산방앗간을 제외한 6곳을 찾았다. 이들이 만들어 낸 시간 속에서 용산구의 맛과 멋 그 정취를 느껴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1974
이태원 한 골목, MZ세대 사이에서 유명한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와 맛집이 이어진 삼거리에 자리 잡은 슈퍼가 눈에 띈다. ‘합덕수퍼’ 간결한 네 글자가 적힌 간판 위로 눈에 띄는 것은 과거와 현재다. 세월이 익은 간판과 건물 그리고 편의점과 달리 옛 정취가 남아있는 1층 슈퍼 위로 같은 건물에 운영 중인 가방 브랜드의 광고가 무엇인지 모를 조화를 이룬다.
합덕슈퍼는 충남 당진 합덕에서 이사와 문을 연 슈퍼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김효태, 장묘순 대표가 50년 전 자리 잡고 매일 같이 가게 문을 열고 있다.
합덕수퍼를 찾는 관광객도 예외없이 수퍼를 들어서면 반갑게 인사를 주고 받는다. 24시간 불을 밝히는 편의점과 다르게 투박하지만, 인사를 통해 안부와 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아직도 가게 문을 활짝 열어놓는 이유라고 김효태 대표는 말한다.
용산구 이태원로42길 20
10:00~22:00
(문 여는 시간이 때에 따라 다름)
1967
해방촌 입구 미군 부대 담벼락에 옹기종기 줄지은 옹기들이 기대어 있다. 반백년 해방촌을 지킨 옹기들이기도 하다. 담벼락 옹기 끝에 자리한 한신옹기가 옹기를 팔기 위해 진열해둔 것이 해방촌의 명물이자 이제는 포토존이 되었다.
한신옹기 신연근 대표는 주한미군을 상대로 옹기와 항아리를 팔기 위해 이곳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경기도 이천에서 공수해 온 커다란 항아리 외에도 장인들에게서 받아온 제품들이 빽빽이 전시되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옹기에 관심있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한신옹기는 오래가게이자, 서울 미래유산으로도 선정돼 있다. 1967년 개업해 50년 가까이 한자리에서 옹기를 판매했다는 것. 옹기라는 하나의 품목을 고집해 오랜 세월 뚝심 있게 장사해 신연근 대표의 정신이 깃든 곳. 오늘도 용산구민, 해방촌을 찾는 사람들은 옹기 앞을 지나간다.
용산구 신흥로 7
11:00~18:00
1973
“포린 북 스토어” 간판을 ‘콩글리시’ 발음으로 읽은 말, 포린북스토어의 정식 상호는 이태원북스다. 1973년부터 영업을 시작해 50년 넘게 자리를 지키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외국 중고책 서점으로 간판 아래 차광막에 쓰인 영어 문장처럼 ‘모든 종류의 책을 사고, 팔고, 교환’해 왔다. 17평 남짓 작은 가게에 10만여 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이제는 이태원북스를 연 최기웅 대표에 이어 그의 딸인 최미라 대표가 부모님의 뜻에 따라 대를 이어 운영 중이다.
최미라 대표는 “이태원북스의 멋은 빈티지한 책이 선사하는 포근함과 책 냄새예요.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책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죠. 외국 중고서적이 선사하는 매력을 느끼러 오세요.”
서울 용산구 녹사평대로 208
(6호선 녹사평역 3번 출구 인근)
매일 10:00~22:00
1971
대성표구사 또한 문을 연 이명운 사장에 이어 딸과 아들, 두 남매가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커피숍과 옷가게, 식당이 즐비한 이곳에 대성표구사는 왜 자리를 잡았을까? 실은 대성표구사가 문을 연 뒤 지금의 두 자녀가 아버지의 대를 이을 때만 해도 근처에는 ‘고가구’상점이 즐비했었더랬다. 고가구와 함께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할 작품 등이 수출까지 할 정도였다고. 최근에는 ‘빈티지’에 관심이 많거나 레트로 문화를 접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대성표구사에 멋은 전통 그림을 구경하는 맛이에요. 스스럼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구경해 보세요. 오랫동안 모아온 민화, 풍속도, 초상화가 가득해요.
용산구 이태원로 216, 1층
10:00~19:00
1967
고소한 냄새가 먼저 반겨주는 곳, 김용안 과자점은 아침마다 손수 구워내는 전통 과자인 ‘센과자(생과자)’만 판매하는 곳이다. 추억의 생과자가 네모반듯한 전면유리로 된 판매진열대마다 수북이 담겨 있다. 매장 내에 생과자 누름틀에 한 종류마다 8시간이 걸려 만들어진 과자는 과거 미군들의 귀국 선물 필수 간식으로 판매되었다고. 최근에는 생과자의 추억을 맛보기 위해, 생과자의 맛이 궁금해 찾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김용안 과자’라는 큼직한 글씨가 생과자에 쓰여있고 1대 사장에 이어 아들 김형준 대표는 과거 모습처럼 종이봉투에 과자를 담아 판매한다. 김형준 대표는 “다른 생과자보다 더 고소하고 파삭한 맛의 비결이요? 달걀을 아끼지 않고 생과자를 만들어요. 생강과자의 생강은 외부에서 공수하지 않고 직접 생강을 갈아 생강 고유의 식감과 맛이 생과자에 어우러지도록 하는데 겨울이면 다른 계절보다 생강 과자가 더 잘 팔리죠.”라고 전했다.
용산구 한강대로 155-1
10:00~17:00,
매주 일요일 정기휴무
1900
다른 터줏대감에 비해 개미슈퍼는 아주 오래전 상점으로 자리를 지키다가 지금의 차효분 대표가 1970년 네 번째 주인으로 영업을 이어오는 곳이다. 차효분 대표는 개미수퍼 바로 맞은 편 건물에서 태어나 지금의 개미슈퍼 운영까지 이어하고 있으니 용산의 진짜 터줏대감이나 다름없다. 개미슈퍼는 서울역 건너편 게스트 하우스가 많이 위치한 지역 특성상 외국인 관광객 발길이 많이 닿는 곳이기도 하다. 차효분 대표는 외국인 관광객 기호에 따라 상품을 골라주거나 가게 곳곳에 친절한 설명을 적어두었다. 이러한 점이 다양한 품목, 간편식을 판매하는 편의점과 다르게 외국인들이 개미슈퍼를 찾는 이유 중 하나다. 이밖에도 그가 항상 신경을 기울이는 것은 깨끗한 동네, 예쁜 동네를 만드는 것이다. 건물 외관이나 가게 내부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순 없지만. 화분을 두고 외벽을 화사하게 칠하면서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과 찍은 사진을 내다 걸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기념 촬영을 한 관광객이 또 다시 재방문할 만큼 짧은 시간임에도 차효분 대표는 관광객과 정도 깊이 나눈다.
서효분 대표는 “저는 항상 여기 슈퍼에만 머물다보니 누군가 다시 찾아주는 게 선물 같아요. 편의점도 있고 기념품숍도 있지만, 명소라면 찾아와 주셔서 사진을 촬영하는 건 긴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정이 쌓이는 일이라 생각해요. 오늘도 개미슈퍼만의 정을 쌓아간답니다.”
용산구 청파로85길 31 1층
여름 8:30~01:00,
겨울 9:00~2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