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동네 한바퀴1
용산의 시간을 걷다,
역사의 출발점이 된 정자
‘창회정터’
글. 사진. 제은진 명예기자
역사의 물줄기 바꾼 출발점
요즘 극장가에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는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선택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역사는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흔히 화려한 궁궐이나 치열한 전쟁터에서 역사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아 뜻을 나눈 자리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출발점이 된 장소가 용산구에 있다. 바로 서빙고동에 위치한 ‘창회정터’다.
조선시대 한강을 굽어보는 절경 위에 세워진 정자인 창회정은, 선비들이 자연을 벗 삼아 시를 짓고 담론을 나누던 공간이었다. 한강을 내려다보는 자리에서 바라본 노을과 강물의 흐름은 그 자체로 한 폭의 산수화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은 조선의 권력 지형을 뒤흔드는 만남의 무대가 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수양대군(훗날 세조)은 창회정에서 권람을 만났다고 한다. 권람은 당대의 문신이자 정치가로, 수양대군에게 한명회를 소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훗날 세조의 책사로 활약한 한명회 역시 조선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이 만남은 조선의 비극적 사건인 계유정난으로 이어진다. 1453년, 수양대군은 김종서 등 반대파를 제거해 권력을 장악했고, 이후 어린 임금 단종은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길에 오르게 된다. 창회정은 이 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씨앗이
싹튼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용산에서 살아 숨쉬는 이야기
오늘날 건물은 사라지고 터만 남았지만, 이곳에 서면 과거의 시간을 오롯이 상상해 볼 수 있다. 한강을 바라보며 수양대군은 어떤 고민을 했을까. 권람은 어떤 말로 그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흔히 용산은 근현대사의 중심지로 자주 조명되지만, 그보다 앞서 조선의 정치적 격변 또한 이 땅에서 움트고 있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영화를 통해 역사에 관심이 생겼다면, 역사 현장을 직접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스크린 속 이야기가 현실의 공간과 만나는 순간, 역사는 더 이상 먼
과거가 아니라 우리의 발밑에서 숨 쉬는 현재가 된다. 이곳이 여러분에게 흥미로운 시간 여행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Tip
‘왕과 사는 남자’ 영화의 배경이 되는 영월은 용산구와 자매도시로 용산구민이라면 주요관광지를 50% 할인된 관람료로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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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치
용산구 서빙고로 245, 용산구 장애인커뮤니티센터 오른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