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ANGE

용산 더 달라집니다

여행을 떠나요

한강 위에 놓인 첫 번째 길,
그곳에 새겨진 126년의 기억 여행

서울 하늘 아래 한강을 가로지르는 녹색 철교 하나가 있습니다. 매일 수십 편의 열차가 오가는 이 다리가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교량, ‘한강철교’입니다. 1900년 첫 교량이 완공된 이래, 한강철교는 전쟁과 홍수, 복구와 확장을 거치며 126년의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이촌동 한강변을 거닐다보면 마주치는 이 다리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2025년 한강철교 모습 (출처 : 용산도시역사아카이브)

배 타고 건너던 한강, 철마(鐵馬)의 길을 열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건너는 한강이지만, 120여 년 전만 해도 한강을 건너는 유일한 방법은 ‘배’였습니다. 당시 경인선을 이용하던 승객들은 노량진역에서 내려 배를 타고 용산나루까지 건너와야 하는 불편을 겪었죠. 이런 불편을 끝낸 것이 바로 한강철교입니다.
1900년 7월,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교량이 완공되면서 비로소 기차가 서울 도심까지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사람도 다닐 수 있는 복합 교량으로 계획되었으나, 부설권을 가져간 일본이 공사비를 이유로 인도를 없애고 철교로만 건설하게 된 아쉬운 역사도 숨어 있습니다.

최초의 인도교, 한강대교의 탄생

철길이 열리고 17년이 지난 1917년, 드디어 사람들이 걸어서 건널 수 있는 한강 최초의 인도교(현 한강대교)가 개통되었습니다. 개통식에 모인 내외 빈객만 1,000명, 첫날 다리를 건넌 사람만 무려 15만 명에 달할 정도로 당시 인도교는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였습니다. 한강대교는 초기에는 각진 트러스 구조였으나,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한강철교와 인도교가 모두 크게 파손된 후 1936년 확장 공사를 통해 지금과 같은 부드러운 아치형으로 바뀌었습니다.

한국인 기사 ‘최경렬’의 자부심

1936년 인도교 확장 공사가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당시 한국인 기사였던 32세의 최경렬 기사가 설계와 감독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꼼꼼하게 지어진 다리는 6·25 전쟁 전까지 우리 곁을 든든히 지켜주었습니다.

아픈 역사 속에 멈춰 선 다리

인도교 폭파 사건

1950년 6월 28일 새벽,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한강인도교가 폭파되었습니다. 당시 다리를 건너던 피난민과 차량이 희생되는 비극이 발생했으며, 이는 현대사의 가슴 아픈 실책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강철교의 수난

한강철교 역시 전쟁 중 3개 노선이 모두 크게 파손되었다가, 휴전 이후에야 지금의 모습으로 복구되었습니다.

1914년, 한강철교 교량개량공사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
경부선 한강철교의 열차운행 광경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
2004년 한강철교 모습 (출처 : 용산도시역사아카이브)
알고 계셨나요? 초록색 다리의 비밀!

현재 한강철교 중 A, B, C선은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산뜻한 녹색으로 칠해져 과거의 기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나에서 넷으로,
한강철교의 성장

한강철교는 처음 단선 교량 하나로 시작했지만, 철도 교통이 늘어나면서 교량도 하나씩 더해졌습니다. 현재는 총 4개의 교량(A·B·C·D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900년 A선 개통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교량,
단선 교량으로 경인선 운행 시작
1912년 B선 완공 경부선 개통에 맞춰 두 번째 단선 교량 건설,
경부선 하행선으로 활용
1944년 C선 준공 복선 교량으로 확장, 교통량 증가에 대응
1950년 6·25 전쟁으로 A·B·C선 모두 크게 파손,
휴전 이후 복구
1995년 D선 완공 가장 최근에 놓인 복선 교량, 등록문화재 대상 아님

역사 126년
(1900~현재)

총 교량 수 4개 노선
(A·B·C·D)

등록문화재 A·B·C
3개 노선

오늘도 시간을 잇는 풍경

전쟁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한강대교는 1982년 8차선으로 확장되어 서울의 동맥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강철교 또한 과거의 증기기관차부터 오늘날의 KTX까지 하루 수많은 열차가 다리를 건너고 있고요. 시대는 바뀌었지만 다리는 여전히 사람과 도시를 이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