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에는 섬도 있다, 노들섬
옛날 지도를 보면 한강에 섬이 여럿 있었다. 잠실에 있던 잠실도와 부리도, 옥수동 앞쪽에 있던 저자도, 지금도 남아 있는 여의도와 그 옆의 밤섬(栗島), 이름만 남은 난지도 등이다. 이렇게 강 한가운데 있는 섬을 하중도(河中島)라고 하는데, 한강이 꽤 폭이 넓은 강이니 하중도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다 사라지고 없다. 한강을 개발한다면서 물줄기를 ‘반듯’하게 바꾸었고, 그 과정에서 하중도의 모래를 강 양쪽을 매립하는 데 쓰면서다. 1968년 한강개발 3개년 계획이 그 시작이었다. 그 결과 전에 없던 석촌호수도 생겨났고,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부지도 생겨났다. 한강 양편에서 동서 방향으로 달리는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도 그래서 만들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물 흐름을 막고 있던 섬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아주 작아졌다.
새로 만든 인공섬, 중지도
한강의 섬들이 없어지는 중에도 새로 생긴 섬이 있다. 바로 용산구 이촌동의 노들섬이다. 노들섬은 본래 섬이 아니었다. 조선시대에는 신초리라는 마을이 있었고, 지금의 이촌동에서 모래밭을 지나 걸어 다닐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17년 한강에 다리를 놓으면서(지금의 한강대교) 노들섬 자리에 흙을 쌓아 철로가 지나가게 했고, 그래서 그 자리에 높은 언덕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한강을 한 번에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설하는 것보다 중간에 섬을 만들어 거치도록 하는 것이 공사하기에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새로 생긴 언덕 같은 섬 이름을 일본 말로 나카노지마(中之島)라고 했고, 우리말로는 중지도라고 불렀다. 나카노지마는 일본에서 하중도를 가리키는 일반명사지만 그것이 그대로 섬의 이름이 된 것이다. 이름만 빼앗긴 것이 아니었다. 그때까지 그곳에 살고 있던 신초리 사람들도 땅을 빼앗기고 쫓겨났다.
중지도는 한강 양쪽에서 다리로 연결되었으므로 걸어 다닐 수 있었지만, 꼭 다리를 건너지 않더라도 용산 쪽에서는 걸어서 갈 수 있었다. 지금의 동부이촌동과 서부이촌동, 그리고 노들섬을 잇는 백만 평 정도의 광활한 백사장이 있었다. 이 한강 백사장은 식민지 시기는 물론 1960년대까지도 수많은 사람이 모여 물놀이를 즐기는 명소였다. 1956년 5월 신익희 당시 대통령 후보의 유세가 열린 곳도 바로 여기였다. 그러나 1968년 한강 개발로 이 일대의 모습이 크게 달라졌다. 한강 북쪽을 따라서 둑을 쌓고 제방도로를 건설했는데(지금의 강변북로) 이를 위해 한강의 모래를 퍼 날랐다. 꼭 그 도로공사가 아니라도 서울의 이곳저곳을 개발하면서 여기에 있던 모래를 가져다 썼다. 결국 한강 백사장이 사라지고 중지도는 다리를 통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섬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중지도 매립 공사가 진행되었다. 섬의 기존 둑 바깥쪽에 새 둑을 쌓고 그 사이를 모래로 메우는 작업이었다. 그 결과 섬의 면적이 전보다 네다섯 배 커져 지금의 크기가 되었다. 1973년에도 섬을 둘러싸고 옹벽을 쌓았고, 1982년부터 진행된 정비사업으로 섬 주변의 모래밭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면서 시멘트 둔치로 둘러싸인 ‘반듯’한 섬이 되었다. 반듯하게 정비된 강에 반듯한 인공섬이 어울리는 것도 같지만, 이게 과연 자연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노들섬의 시대
한강 정비 과정에서 만들어진 중지도는 이제 자기 이름을 정비할 차례가 되었다. 1917년 이후 중지도라고 불렸고, 1962년 제2한강교(지금의 양화대교)를 놓을 때 제2중지도가 생기면서 한동안 제1중지도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식 이름을 고쳐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서 1987년 노들섬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동시에 제2중지도는 선유도로 바뀌었다.) 노들의 원말은 ‘노돌’로, 백로가 빙빙 돌면서 나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노돌이 노들로 바뀌고, 한자로 표기하면서 ‘노(로)’는 백로의 ‘로(鷺)’로, ‘들’은 ‘들보 량(梁)’으로 쓰게 되어 노량이란 이름이 억지로 생겨났다. 노량진의 원래 이름은 노들나루이고, 그 이름이 노들섬과 더불어 지하철 9호선 노들역에 남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노들섬으로 바뀌기 전인 1934년에 ‘노들강변’이란 노래가 만들어진 것을 보면 민간에서는 노들이라는 고유어를 사용하고 있었음을 알겠다. 이름을 찾았으니 ‘노들강변’ 노래가 새롭게 들린다. 이쯤에서 한 번 흥얼흥얼 불러 보시면 어떨까.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허리를 칭칭 동여매여나 볼까
에헤요 봄버들도 못 믿을 이로다
흐르는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
서울의 새로운 명소
노들섬이 알맞은 이름을 찾았으나 제 역할을 찾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다. 반듯한 섬을 만들어 놓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다가 1989년 한 건설회사에 매각되었고, 한동안 테니스 코트가 자리 잡았다. 테니스 동호인들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일이었지만, 서울시민이 함께 누리기에는 부적절한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 2005년 서울시에서 매입해서 활용 방안을 찾기 시작했고, 한때는 오페라 하우스를 지으려고도 했지만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우려 때문에 포기했다. 2019년 섬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복합문화시설을 조성하기로 결정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이곳에 오페라 하우스가 들어서건, 복합문화시설이 들어서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용산구민들이 쉽게 갈 수 있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면 족하지 않을까? 노들섬은 앞으로 잘 활용해서 서울의 명소로 가꿔 가야 할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