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듬뿍2
술술 풀어쓰는 일상 속 과학이야기
진취적인 기상의 상징인 말,
오늘날 행복할까?
병오년(丙午年)인 올해는 말의 해다. 천간인 ‘병’의 속성이 붉은색이니 붉은 말의 해가 된다. 말을 생각하면 드넓은 평원에서 힘차게 달려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대륙을 누비던 기마대가 떠오르기도 한다.
글. 고호관 작가
SF·과학 분야의 글을 쓰고 번역하는 작가.
<동아사이언스>에서 과학 기자로 일했으며
저서 『우주로 가는 문, 달』 등이 있다.
5000여 년 전부터 인류와 함께 한 말의 진화
말은 힘과 질주, 도약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게다가 붉은 말이라고 하면 으레 하루에 천 리를 달렸다는 적토마가 떠오르게 마련이니 올 한 해에 대해 약간의 미신적인 기대를 품게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말은 달리기에 매우 적합하게 진화한 동물이다. 심장은 몸무게에 비해 커서 빠른 속도로 피를 전신에 공급하며, 폐도 면적이 넓어서 풍부하게 산소를 공급할 수 있다. 사람처럼 땀을 흘려 체온을 낮추는 능력이 뛰어나다. 덕분에 빠르면서도 오랫동안 달릴 수 있다. 말이 처음 길들여진 뒤부터 자동차가 등장하기까지 약
5000년 동안 말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육상 교통수단은 없었다.
말이 가축이 될 수 있게 해준 유전적 변이에 관한 연구가 지난해 발표됐다. 중국과 스위스 연구진은 고고학 유적의 말뼈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한 결과 말의 가축화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유전자가 집중적으로 선택받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진은 그중 두 가지 유전자에 주목했다. 하나는 ZFPM1 유전자로, 약 5000년 전부터 급속히 늘어났다. 이 유전자는 불안감을 덜 느끼게 해준다. 따라서 그즈음부터 사람이 온순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말을 선택하고 교배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하나인 GSDMC라는 유전자는 특정 변이가 생기면 척추의
형태가 변해 사람이 타거나 짐을 실을 때 불편함을 덜 느낀다. 연구진은 이 유전자 변이가 불과 수백 년 사이에 거의 모든 말에게 퍼졌음을 알아냈다.
그 결과 말은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가축이 되어 농사와 운송, 전쟁 등에 종사했다. 말이 없었다면, 인류의 역사는 지금과 사뭇 달랐을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말이 유용한 가축이다.
그런데 그 5000년 사이에 말은 자연에서 사라졌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야생마 무리는 있지만, 이들은 원래 가축이었다가 탈출했거나 갈 곳을 잃어 야생으로 돌아간 말의 후손이다. 따라서 유전적인 뿌리는 가축 그대로다.
가축이 아닌 유일한 야생마로는 말의 아종인 프르제발스키말(몽고야생마)이 남아 있다. 야생에서 살던 프르제발스키말은 1969년에 멸종했지만, 동물원에 살아 있던 개체를 이용한 복원 사업을 벌인 결과 여러 곳에 무리 지어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수가 적어 멸종위기종에 속해 있다.
말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생각할 때 진정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야생마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얄궂게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다. 말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가축화를 거부하고 드넓은 평원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녔다면 더 행복했을까?
술술 풀어쓰는 일상 속 과학이야기
일상의 호기심을 탐구하는 과학 코너가 연재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