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용산수위관측소 위치
용산구 청암동 169
강수량이 많아 홍수가 걱정될 즈음이면, 기자들이 찾는 곳이 있다. 현장감을 담아 보도하기 위해서 우비를 입고 비를 맞는다. 한강인도교 또는 잠수교 수위가 홍수위에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보도하며, 현재 상황을 알려준다. 서울의 한강수위는 한강과 잠수교에서 보도되는 것 같다. 용산은 홍수위 등의 측정에 중요한 지점이다. 예전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한강의 조위와 홍수위를 관측하기 위해서 용산에 수위관측소가 있었다. 그 위치는 현재의 잠수교나 한강대교에서는 조금 벗어난 곳인 원효대교와 마포대교 사이다. 한강둔치를 걷다보면 용산의 거의 끝지점인 청암동에 독특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다. 등대 모양의 구조물인데,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못 보고 지나칠 수 있다.
2002년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된 구용산수위관측소는 1924년에 만들었다. 1976년 9월까지 수위관측을 했고, 1977년에 폐쇄하였다고 한다. “철근콘크리트 우물통 모양으로 수면과 우물통 내부를 지름 10cm 내외의 철관으로 연결하고 우물통 내부에 부자를 띄우면 조위변화에 따라 자동으로 수위를 그리는 방식으로 측정하였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내부를 보고 싶었으나,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심원정터 위치
용산구 효창원로 8길 28
용산문화원과 한강수아파트 사이 언덕 위에 작은 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200년 이상 된 느티나무 5그루가 있다. 그중 680년 된 느티나무도 있다. 그 느티나무 위에 ‘심원정터 왜명강회지처비’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다. 용산구청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심유경과 왜군 장수 고니시가 강화 회담을 한 장소로 전해진다. 회담 후 일본과 명나라가 강화를 한 곳이란 뜻의 ‘왜명강화지처’비를 세우고 기념으로 백송을 심었다고 한다. 백송은 지난 2003년 고사하였지만, 백송의 씨앗이 근처 바위틈에서 어린나무로 자라나 수백 년 된 느티나무와 함께 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 내용에 대해서는 사료로 명확하게 증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이 비석은 그 어떤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한다. 안내문의 정확성 여부를 떠나 임진왜란 때 침략당했던 조선을 배제한 채 왜와 명이 강화협상을 했다는 씁쓸한 역사. 6·25 전쟁의 휴전회담에서도 반복된 역사. 앞으로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의 주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