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4월에 여기 왔으니 올해로 딱 31년 됐네요. 그전에는 삼성전자에서 팀장으로 일했는데, 같이 일하던 직원이 여기서 일을 했었어요. 그래서 인사를 하러 왔었는데, 이 시장이 나와 운명이라는 느낌이 딱 오더라고요. 그런데 그 직원이 사정이 생겨서 가게를 내놓게 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가게를 샀고, 지금까지 해왔네요. 그때 당시만 해도 주변에서는 왜 좋은 회사 다니다가 힘들게 장사하냐고 했지만, 저는 여기서 일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제가 요리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재밌는 거 하면서 살아왔고,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어요. 그러다 이렇게 건강할 때 떠날 수 있게 됐으니,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제가 이 시장에서 제일 오래 일했어요. 스무 살에 장사를 시작해서 군대 다녀온 뒤 잠시 다른 데서 1년 했다가, 다시 여기로 돌아와 지난 2월까지 장사했거든요. 여기서만 거의 60년을 한 거죠. 그러니 가게 문 닫을 때 눈물이 났죠. 우리 가게에서 다른 사장님들이랑 다 같이 밥도 먹고, 무거운 거 옮길 때나 도움이 필요할 때 서로서로 도우면서 한집 식구처럼 지냈어요. 이제 떠나려니 헛헛해요. 그래도 재개발이 된다니까, 떠나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서로 협조해야죠. 이제는 같이 장사했던 부인과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잘 살아 보려고요.
여기서 참기름, 들기름으로 벌어서 두 아들 대학까지 다 보내고 큰 애는 아들 딸까지 있어요. 작은 애도 곧 결혼하고요. 이제 애들도 다 크고 가게도 닫게 됐으니 우리 부부는 운동도 하면서 전국 팔도를 유람해 보려고 해요. 손님들께서 우리가 떠나면 이제 참기름은 어디서 사야 하냐고 걱정들을 많이 하세요. 사장님네 같은 참기름 어디 가도 없다고요. 그 말을 들으면 마음 한편으로는 뿌듯하고 좋으면서도 죄송하죠. 떠나려니 시원섭섭하지만, 우리 부부가 여기서 열심히 살았다는 자부심은 있어요.
제가 여기 와서 우리 아들을 낳았어요. 우리 아들이 56살이니까, 그 정도 여기서 장사를 했네요. 그때는 여기가 슬레이트 지붕으로 되어있어서 조금만 비가 와도 물이 새고, 많이 오는 날엔 양말도 못 신었어요. 시장 바닥이 물 천지니까. 그래도 어린 아들을 데리고 와서 장사했는데, 이제는 벌써 손자가 중학생이 되었네요. 일생을 보낸 시장을 떠나려니 눈물 나요. 제 인생이 다 여기 있거든요. 함께 일한 다른 가게 사장님들과도 친형제처럼 지냈는데, 많이 생각날 것 같아요.
여기서 32년을 장사했는데, 시장이 없어진다고 하니 섭섭하고 슬프기도 해요. 이곳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예요. 제 나이가 벌써 70살이 넘어서 그만둬야지 싶다가도, 우리 집을 찾는 손님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건너편에 새로 가게를 열려고 해요. 아쉽지만 장사는 계속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