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
지난 호에서 부정행위를 하고 아내를 돌보지 않은 채 사망한 A씨의 상속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바람을 피운 배우자가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은 아내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조강지처를 만년에 이렇게 쫓아내는 이혼소송이 가능하다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으신가요?
맞습니다. 잘못을 한 사람이 아무 잘못 없는 배우자를 상대로 이혼하자고 청구하는 것을 우리 법원은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를 두고 우리 법원은 이혼과 관련해서 유책(有責)주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유책주의는 혼인의 파탄(破綻)에 책임이 있는 사람의 이혼청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위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일본의 판결을 우리나라도 따른 것인데 “배우자가 바람도 피웠는데 이혼까지 당한다” 그러니 이런 것은 엎친 데 덮친 격이라서 허용하면 안 된다는 내용입니다.
다만 지금의 세계적 추세는 이혼과 관련해 유책주의가 아니라 파탄주의, 즉 혼인이 사실상 파탄 난 상태라면 파탄에 책임이 있는 사람의 이혼청구도 받아준다는 것인데, 심지어 우리나라보다 먼저 “엎친 데 덮친 격” 판결을 낸 일본도 이제는 유책주의를 사실상 폐기하고 파탄주의를 따르고 있다고 평가됩니다.
우리 법원도 유책주의를 수정하려는 경향들이 보입니다. 예를 들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에 대해 상대방이 오기나 보복적 감정으로 이혼을 해 주지 않겠다고 버티는 경우에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받아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 이미 혼인은 파탄 나서 부부가 따로 살고 서로 부양도 하지 않고 또 속마음은 이혼하고 싶으면서 “내가 누구 좋으라고 이혼해 주느냐” 하면서 버티는 경우에는 이혼청구를 받아주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할 경우 바람을 피운 배우자가 아무 자력이 없는 아내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해서 아내를 내쫓아 버리는 폐단(이런 것을 축출혼이라고 합니다)이 생길 수도 있어서 법원은 유책주의의 예외를 인정하는 데 매우 신중한 편입니다.
지난 호의 사례로 돌아가 보면 불륜을 저지른 A씨가 불륜 상대였던 C와 혼인하기 위해 아내 B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해서 1심 판결에서 이혼 판결이 선고되었는데, 아내 B가 ‘오기나 보복감정’으로 이혼을 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정리해 항소심에서 제출하면 A의 이혼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도 상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