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으로 보여준 관심과 사랑이 용산역사박물관을 풍성하게 합니다”
황종수 씨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용산역사박물관 개관 사업이 긴 여정 끝에 드디어 개관을 앞둔 시점, 애정 어린 눈길로 박물관 이곳저곳을 살피는 나이 지긋한 한 남자, 그는 오래된 해방촌 주민 황종수 씨다.
자신을 콜렉터라고 소개하는 황종수 씨는 평소 사용하던 것, 소중한 물건들을 쉽게 버리지 않고 간직하는 성격이라 그동안 모아둔 것이 작은 개인박물관만큼 되었다. 살아온 세월만큼 간직한 물건들이 많아져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소장품 기증 공고를 보게 되었다.
“몇 해 전인가, 용산역사박물관을 개관한다며 주민들의 기증을 받는다는 소식지 공고를 보게 되었어요. 이미 한 차례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을 했던 터라 변변한 물건은 많이 없었지요. 그래도 기증하고 나면 많은 분들이 그 가치를 알아봐 주고 소중히 여겨주시는 모습을 보고 보람을 느껴 선뜻 다시 기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때 소중했던 물건도 시간이 지나 그 필요성을 잃게 되면 공간만 차지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게 되지만 애착이 있는 물건이니 또 쉽게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보니 계속 쌓여만 가는 물건들로 고민이 되게 마련인데 이럴 땐 기증을 통해 내가 아끼던 물건이 버려지지 않으면서도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 안도가 된다는 황종수 씨.
그는 부산 피란민(避亂民)으로 서울 수복과 함께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올라와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쭉 해방촌에서 살아왔다. 1945년 9월생인 그는 이름하여 ‘해방둥이’로 해방 이후 한 달 만에 태어났다. 어머니 태중에서 들었던 만세 소리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몰라도 그날의 그 소리를 자신도 여전히 들은 듯하다는 황종수 씨는 해방 이후 어렵게 살아가던 자신의 가족과 이웃들의 삶을 여전히 기억한다.
“아버님은 해병대사령부 문관으로 근무하셨는데 6.25 전쟁 후 해방촌성당 부근에 터를 잡으셨어요. 저는 당시 초등학교 3학년으로 다섯 살 아래인 누이동생과 함께 용산초등학교에 걸어 다녔어요. 지금의 이태원초등학교 옆으로 ‘찬바람재’라는 야트막한 언덕길을 오르면 삼각지로 가는 길이 지금의 녹사평대로 건너까지 이어졌죠. 당시 미8군 담벼락으로 이어지는 플라타너스 나무 가로수길을 걸어서 학교에 갔어요.”
상수도 시설이 없던 때라 물지게를 지고 날라야 했던 기억도 있다. 수업을 파하고 집으로 오면 200m 거리의 남산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 대나무 물통에 파는 일명 ‘쫄쫄이물’ 두 통을 양쪽 어깨에 지고 몇 번씩 쉬어가며 집으로 왔던 기억도 생생하다. 형제가 늘면서 어머니도 생계를 돕느라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재봉틀로 바느질을 하셨는데 그 재봉틀은 아직도 황종수 씨 집의 가보로 남아 있다.
“당시 해방촌은 이북에서 온 피란민들이라 생계를 위해 뭐라도 만들어 팔아야 했어요. 당시 우리나라 물건은 다 해방촌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우리집에서도 계단식 닭우리를 만들어 200여 마리의 닭을 키워 계란을 내다 팔고, 배설물은 한남동 한강나루터에 싣고가 배를 타고 나가 팔기도 했죠.”
황종수 씨는 해방촌에 터를 잡고 당시 용산국민학교, 숭실중학교, 숭실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공직에 나서면서 주민들과 함께하는 활동도 많았다. 새마을운동 당시에는 동네 곳곳에 확성기가 설치되어 청소하는 요일이 되면 확성기에서 새마을운동 노래가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 그러면 마을사람들과 직장 동료들은 한 몸이 되어 골목골목을 쓸고 가꿨다.
“그때 당시 쓰던 새마을운동 노래가 담긴 CD를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이번에 기증했지요. 88올림픽 당시 받은 기념품들도 다 기증하고요.”
자신이 기증한 물건들이 그리 대단치 않다며 부끄럽다고 말하는 황종수 씨는 한 사람의 역사가 그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사라지는 것이 참 안타깝다고 말한다. 한 사람의 역사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그 이야기들이 모여 우리의 역사가 되는 것이니 말이다. 한때 자신의 개인사박물관을 만들어볼까도 생각했지만 물건을 보관하는 것도, 장소를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지역 역사박물관이 개관하고 지역민의 생활사를 수집한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었다.
“저처럼 소장품을 기증하며 부끄럽거나 ‘내 소장품들을 하찮게 여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선뜻 기증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잘 몰라 못하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이런 분들을 위해 기증에 대해 독려하는 홍보가 꾸준히, 더 많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이제는 해방촌도 옛 모습을 많이 잃었고, 주변의 이웃들도 많이 떠나 새로운 이웃들이 더 많아졌다는 황종수 씨, 그렇기에 앞으로 지역의 옛 소장품들을 찾기가 더더욱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역사 속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품은 도시이니만큼 지금이라도 용산의 역사박물관이 생긴 것이 너무나 기쁜 일이다. 여기에 지역민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함께 보태진다면 진정한 지역 역사박물관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그는 오늘도 열심히 자신의 수집품들을 골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