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을 한 아들 대신 운전을 했다고 한 아버지
다음 날 경찰서에서 A씨에게 전화가 옵니다. 담당 경찰관은 어제 저녁에 운전을 하면서 다른 사람 차와 접촉사고난 것을 알면서도 그냥 간 것 아니냐 물으며 경찰서로 나와서 조사를 받으라고 합니다. A씨가 아들에게 말하니 아들은 “나는 경찰서에 들어가면 구속될 거예요. 아버지는 전과도 없고 음주운전도 한 적 없는 데다 고령이라 구속하지 않을 테니 아버지가 운전한 것으로 좀 해주세요”라고 사정을 하였습니다. A씨는 마음이 약해져서 경찰서에 출석해서 내가 어제 운전을 하다가 다른 사람 차를 긁었는데 접촉 사고가 난 것을 잘 몰라서 그냥 들어 왔다고 하면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A씨와 B는 어떤 처벌을 받을까요?
그런데, B가 범죄 현장을 이탈해 도피한 것이니 혹시 범인도피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범인은닉(도피)죄는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자를 은닉 또는 도피하게 하는 것인데, 범인이 스스로 도피하거나 숨은 행위를 처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B는 범인도피죄로 처벌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늦게 얻은 자식이 딱해서 자신이 범인이라고 허위 자수한 A씨입니다. A씨는 범인인 B를 도피하도록 한 것이므로 원칙적으로는 범인도피죄 처벌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형법은 동거친족이나 가족이 범인도피죄를 저지른 경우는 처벌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자식의 죄를 숨겨주는 것, 동생이 형제의 죄를 숨겨주는 것은 인지상정이고 이런 것까지 형법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살인죄를 저지르고 집에 숨어 있는 아들을 찾으러 온 경찰관에게 우리 아들은 여기에 없다고 거짓말하는 어머니를 처벌하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결국 A씨는 아무 죄로도 처벌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 A씨로 하여금 범인도피를 하도록 한 B는 범인도피를 아버지에게 교사한 것이므로 교사죄로도 처벌받게 됩니다. 결국 A씨가 아들을 보호하려 했던 행동이 오히려 아들을 더 무겁게 처벌받게 만든 셈입니다.
범인은닉죄의 친족 특례는 범인의 가족과 동거친족이 범인을 숨겨줄 때만 처벌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므로, 연인 사이, 의형제 같은 직장 동료, 피를 나눈 것 같은 학교 선후배 등을 숨겨주는 행위는 모두 범인은닉죄로 처벌받는다는 것을 유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