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선 한강진역 3번 출구에서 3분 정도 걸어가면 용산공예관이 보입니다. 이곳에는 전통공예품 판매장을 비롯해 전시실과 공예가들이 입주한 공방이 있는데요. 코로나19 상황 이후 방역수칙에 따라 공예관 입구에서 방문자 발열 체크와 QR코드 인식은 기본이 되었습니다. 마스크 너머 친절한 직원의 안내를 받아 ‘칠보공예-일곱 빛깔 무지개로 만드는 보물’이라고 적힌 3층 공방에서 노용숙 작가(72세)를 만났습니다.
용산명예기자 이정민
Q.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칠보공예 전승자’이신데, ‘칠보공예’1)와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저는 숙명여대 68학번이라 제 소개를 할 때 용산구 68학번이라고 해요.(웃음) 고등학생 때부터 전시를 많이 다녔는데, 그때 금속공예 작품들을 보면서 이 대학에 가야 배우겠구나 생각하고 지원했어요. 대학 졸업 후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학생들과 칠보 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훈련을 거쳤죠. 기초는 대학에서 배우고, 사회가 저를 연습시켜 준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13년 교직 생활을 접고 ‘칠보공예’ 전업 작가로 나선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네요.
Q. 용산공예관의 입주 공예가로서 자부심과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이렇게 열린 공간에서 작업하는 시스템이 입주 작가들에게는 생소했을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하고 서로 열심히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이젠 전문화된 곳이 됐어요. 또한 1층 매장의 판매에 맞춰서 움직여야 하니까 굉장히 중요한 목적의 정점에 저희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기억에 남는 일은 손녀와 체험을 하고 가신 할머니께서 언제 다시 공예관에 갈 수 있냐고 전화를 주시거든요. 유치원생 손녀가 거제도에 사는데 볼 때마다 칠보 시켜 달라고 한다면서요. 참 기특한 일이죠.
Q. ‘칠보공예’를 접한 외국 관광객들의 반응과 코로나19 이후 근황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저희는 처음 온 사람들이 완성품을 만들어서 가져갈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인기였어요. 용산구에서 세계 각국의 여행자 매니지먼트 대표들을 초대해 진행한 것도 호응이 컸습니다. 작년부터 코로나19로 공예관이 축소 운영되다 보니, 시간 나는 대로 전시회를 다녀요. 제가 잘한다고 디자인이 되는 게 아니고 여러 작품을 보며 사회가 돌아가는 걸 알아야 나만의 것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에요. 공예관에 나오지 않을 땐 열심히 ‘칠보공예’ 관련 책을 쓰고, 나와서는 감사한 마음으로 칠보 작업을 하고 있어요.
Q. 앞으로 계획과 바람이 있다면요?
지금은 카네이션을 주제로 5월 전시를 준비 중이에요. 제 인생의 스승인 어머니가 계실 때 이 네모 판을 만들기 시작한 건데, ‘사모곡’이란 제목의 카네이션 ‘칠보공예’ 시리즈가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칠보 작품으로 화장품 회사와 협업한 것처럼 시계에 칠보를 접목해 제품화하고 싶은 바람도 갖습니다. 10년 넘게 ‘칠보공예’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SNS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요. 비대면으로 다른 나라의 작가 공방 워크숍 공모도 접할 수 있고, 그런 내용과 기획을 본다는 것 자체가 즐거워요. 언젠가 저도 그들처럼 전문가 대상으로 세계적인 인터넷 강의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1) 칠보공예 : 금속 등의 재료에 유리질을 녹여 붙이는 과정을 거쳐 장식 하는 공예